온더길

바위처럼

원조시지프스 2013. 7. 2. 07:53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대한문 매일 미사 집전순서

 

2(화)  프란치스칸 정평창보    3(수)  수원교구  

4(목)  인천교구     5(금)  예수회 

6(토)  서울교구 등   7(일)  대전교구 등 

8(월)  마산교구    9(화)  프란치스칸 정평창보  

 

  2013_07_01_월

 

  +++ 함께 해 주신 사제

 

  주례 : 신동철 신부(안동교구 남성동성당)

  강론 : 황재모 신부(안동교구 사목국장)

 

  안동교구 : 이희정, 권상목, 장현준, 신동철, 황재모, 김영식, 김기환, 김정현,

                 김시영 신부 

  서울교구 : 함세웅, 조해붕, 나승구, 나종진, 이영우 신부

  인천교구 : 장동훈 신부

  의정부교구 : 맹제영, 김영철, 상지종 신부

  전주교구 : 박종근, 정승현 신부

  청주교구 : 김인국 신부

  마산교구 : 하춘수 신부

  작은형제회 : 유이규 신부

  꼰벤뚜알 : 서영섭 신부

  예수회 : 박종인 신부

 

 

  +++ 함께 해 주신 수도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전교 가르멜 수녀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성가소비녀회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예수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녀회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천주 섭리 수녀회

  성심 수녀회                                     노틀담 수녀회

  툿징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예수회

 

 

 

 

 

 

세상 머리 기댈 곳 조차 없는 이 시대의 예수 

 

 

 

                                    강론

황재모 신부(안동교구 사목국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며 용기를 내어 찾아온 율법학자에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18)는 말씀으로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저는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대한문 미사 강론은 준비하면서, 오늘 우리들이 모여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예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유명을 달리한 24명의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분향소를 강제 철거당하고, 비바람과 이슬을 피하기 위한 비닐 천막까지 빼앗겨 길바닥으로 줄곧 내몰리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이 시대의 예수들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쌍용차 문제'는 말 그대로 진짜 문제투성입니다. 회계 조작을 통해 회사 부채를 부풀려 불법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노조 측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통분담을 약속하면서 1,000억 원을 담보 개발자금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을 하였지만, 사측에서는 이를 거부하면서 무지막지한 해고를 단행하였습니다. 그 후 77일간의 옥쇄투쟁이 이어졌는데, , 음식, 의료진을 허용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제요청마저 거부하면서 회사는 물과 전기, 음식마저 차단시키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200985, 공장 지붕에 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를 상륙시켜, 짐승들에게도 차마 하기 어려운 광기어린 무차별 구타를 자행하면서 그들을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마치 테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입니다.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에서는 차단한 소화전을 한참이나 연결하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그 후 그들은 평택 송전탑에서, 국회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하는 수 없이 이곳 대한문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동안 24명의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접어버렸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굴도 잃고, 보금자리도 잃고,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이 시대의 예수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이들에게 다가 선 '길 위의 사제들'이 있습니다. '길 위의 사제'는 문정현 신부님의 별명이지만, 세상의 서럽고 아픈 현장에 항상 함께하고 계신 정의구현 사제단의 모든 신부님들 또한 '길 위의 사제들'이고, 이는 그분들에게 영광스러운 훈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미안하고 또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래도 꿋꿋이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염치도 없이 체면도 불구하고 이 미사의 강론을 맡은 것은, 현장에서 항상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길 위의 사제들' 뒤에는 저희들이 있음을 알려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우리 신부님들의 뒤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많은 신부님들이 부채의식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곤경에 처하면 우리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마음을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시골 안동에서 올라 왔습니다.

 

 

 

 

지난 12월대선 다음 날 아침, 저는 아침미사를 집전하기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려 경문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제서품 후 첫미사 드릴 때도 이렇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도무지 대선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나와 미사에 참여한 수녀님들께 죄송스러웠습니다.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는 무척 어려운 현실이 오늘날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저의 정치적 견해로는 정말로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저의 마음은,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제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5년 동안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저도 그런 국민 중의 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현 정부에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말로 내 뱉은 약속은 지켜주기를 기대합니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를 실시하라는 말입니다. 이번 사태로 2,000여명 이상이 부당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수많은 가족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24명이나 되는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귀하디귀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접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모른척하며 덮어두라는 말입니까? 그들은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현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위선적인 정부가 될 뿐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로 국민을 위한 정부니, 약속을 지키는 정부니 하더라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위선적인 정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자기가 약속했던 것은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위선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신뢰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월부터 3개월 동안 구성되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협의체가 5월 말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4개월 동안 상견례를 포함해 단 네 차례의 회의만 가진 채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는 국정조사 면피용으로 협의체를 급조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정책의 무게중심을 어디에다 두고 일 하는 사람일까요? 어떤 대상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서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도와주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다음 순으로 미루고, 아파하고 신음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 특별히 구조적으로 특히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고린 12,26) 2013년 우리나라의 대한문은 가장 아파하고 신음하며 고통을 겪는 지체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소외된 지체입니다. 이 지체가 많이 아프고 소외당하면 다른 지체도 덩달아 아프기 마련이고 또 당연히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더군다나 지도자라면, 국민의 투표로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이 지체가 얼마나 많이 아픈지, 상처가 덧나지는 않겠는지, 이로 인해 더 큰 상처가 생기지는 않겠는가를 챙겨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가장 소중한 지체는 바로 가장 아픈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창 시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남미의 로메로 대주교님도 처음에는 보수적인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구조적인 사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정의를 위해 투신하고 압제에 저항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도 큰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교황으로 선출될 때 과거 그분께서 보이셨던 일부 보수적인 색채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행보를 보여주니까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것이 아닙니까? 현 교황님의 이런 행보는 권력과 자본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힘과 권력과 부와 명예를 쫒는 행보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는 일이야말로 지도자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어떤 출신성분을 갖고 탄생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게 좋은 지도자, 성공한 대통령으로 가는 '좁은 문'(마태 7,13)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청년교리서는 '한 사회에서 사회적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회적 정의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각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그로부터 나오는 개인의 권리가 제약 없이 보호되고 성취되는 곳에서 실현됩니다. 즉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인간의 권리가 나오는데, 이 권리는 어떤 국가도 폐지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이 권리를 짓밟는 국가나 권력자는 부당한 정권이므로, 자신의 권위를 잃게 됩니다.'(가톨릭청년교리서 329)

  '부당한 정권'이 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요구하기 위해 여기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1독서는,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 하자 아브라함이 쉰 명, 마흔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무 명 그리고 열 명의 의인을 거론하면서 하느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려고 흥정을 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최소한의 의인들만 있어도 그들을 보아 멸망이 아니라 용서를 선택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 모인 분들이 하느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고 권력자들의 회개를 이끌어내어 마침내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가 바로서는 일을 하고 이 시대의 의인들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항상 강건하십시오.

 

저희들은 이 미사를 마치면 다시 각자의 소임지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관심과 연대에 좀 더 많은 할애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빕니다. 아멘.

 

 

 

 

 

 

 

 

 

해고 공화국이 되어버린 나라.. 

 

 

                                    해고노동자 이야기

한상균

 

 

 

 

인사드리겠습니다.

84일동안 저희보다 지치지 않고 오시는 많은 가톨릭 신자 분들.

곁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록 저희는 죽음과 해고와 이 땅의 독재자들의 모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지만

결코 양심과 정의가 흐르고 인간의 존엄함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음들을 이겨낼 수 없다는 대의 앞에 너무나 분에 넘치는 사람들을 저희에게 주심에 감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한 지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이 죽음은 우리가 덧없이 살다가는 인생길에서 누구나 한번 씩 겪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생로병사의 어찌 죽음을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저희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어갔던 동료들의 죽음 앞에 이 사회가 한번 쯤 되돌아보고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땅에는 이미 언제든지 짤릴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해고 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신분으로 노예사회보다 더 악랄한 착취구조 속에서 우리의 자식들과 형제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재벌들은 권력들을 좌지우지 하는 제1의 통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힘이 비정규직화로 착취하고 언제든지 짤라낼 수 있는 소모품이요, 억울해서 하소연하면 화단에다가 묻어버리는 그야말로 악질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610일날 지부장 동지가 구속되고 이곳 대한문 미사에서 함세웅 신부님께서 낭만적인 투쟁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 땅에는 다시 민주주의를 위해서 젊은이와 양심과 정의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국정원이 헌법을 유린하고 재벌들이 끝없는 착취와 탄압에 노동자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에 많은 시민과 학생들, 성직자와 종교인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1500일을 지치지 않고 갈 때, 어려운 조건에서도 84일 미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봄은 왔지만 노동자들의 가슴은 꽁꽁 얼어있었을 때 송전탑 밑으로 1000여명이 넘는 가톨릭의 양심과 정의가 이 나라 권력을 향해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목소리들을 저희는 송전탑 위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 권력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해고가 되어서 줄줄이 죽어가는 이런 해괴한 현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제 권력을 물위에 떠 있는 조각배로 민심이 시민들이 노동자들이 해고자들이 파도가 되려합니다.

그 길에 저희들 지치지 않고 더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지금 비록 검은 영정으로, 얼굴 없는 사진으로 구천을 떠돌고 있는 영혼들의 마음을 가슴에 부여잡고 있지만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대한문과 철탑과 길거리가 아닌 공장으로 돌아가고 현장의 동료들과 함께 그 넓은 공장의 잔디밭에 추모공원이라도 세워야 하겠습니다.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저희들도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