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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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오늘은 빗속 내일은 땡볕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강론
황병석 신부(마산교구 거제성당)
제가 가지고 있는 서울의 기억은 상당히 안 좋습니다. 서울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제가 서울 올 때는 이런 일밖에는 없습니다. 좋은 일로, 관광을 하기 위해서나 멋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올라 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로지 용산에 무슨 일이 생겼다든지, 미문화원에 무슨 일이 생겼다든지 이런 일로 왔어요. 그 전에는 서울에 온 기억이 없습니다. 오늘도 대한문 앞에 와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 또 한 가지 가지고 갑니다.
비가 오는데 여러분들이 저희와 함께 미사를 할 수 있어서 대단히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늘 우리가 이런 미사를 봉헌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잖아요. 조금씩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데 서로가 자기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밀어붙이기 때문에 언제나 힘없는 약자가 희생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원해서 왔습니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각자 원해서 이 자리에 와서 비가 오는 가운데도 미사를 합니다. 하지만 옆에 서있는 경찰들을 보면 참 불쌍합니다. 원해서 왔나요? 아니에요. 위에서 시키니깐 온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누가 시켰든지 이 자리에 왔으면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죽는 그날까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 약자의 시대가 도래 한 훗날, 그 시대 강자였던 너희들은 그날 그때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냐고 물을 때 그때는 우리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게 된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위에서 누군가가 시켰기 때문에 명령을 목숨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강자의 시대가 끝이 나고 약자의 시대가 올 때마다 역사의 현장이 바뀔 때마가 그 역사를 바꾼 주체들은 도적들입니까? 그들은 민족 앞에 지은 죄를 참회해야 하는 사람들입니까? 달리 말하면 그 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는 사람으로 살다 죽어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독립투사들이 그 시대에 저항을 했는데 저항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고 민족의 영웅으로 섬기고 살아야 합니까? 그들 또한 죄인 아니겠습니까?
신앙인에게 있어서 국법으로 하지 말라는 천주학을 믿어온 선조 순교 신앙인들은 폐악무도한 죄인으로 낙인 찍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시대를 저항해 왔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불사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민족 앞에 떳떳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오늘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승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몰아치는 것으로 자기의 역할을 한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면 또 한 번 변명을 하지 않는, 변명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나는 그때 행동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저들에게 부탁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아니라면 시대가 바뀐다면 죽는 그날까지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언제나 그들의 시대가 가고 그들이 약자 편에 서게 되었을 때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이 한 행동을 합리화 하는 것을 바라볼 때 그들이 얼마나 비열한 사람들인가를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죠.
오늘은 비가 오지만 내일은 땡볕 때문에 힘들어 할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혈루증을 앓는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열두 해 동안이나 자기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 볼 때 그 사람은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습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다 자기 몸에서 생명이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은 비를 맞고 있고 내일은 땡볕에서 온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도 하루하루 혈루증을 앓는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있어야죠. 주님 옷자락에 손만 대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용기 말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손을 내밀어 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힘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그들에게 우리는 옷자락 한 자락을 내어 줄 수 있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하는 곳에 손을 내밀어서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킴으로써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어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신앙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분위기 조금 바꿉시다. 누가 성숙한 사람입니까? 학벌이 좋은 사람입니까?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명예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철이 들었다, 성숙했다고 말합니까? 나이를 많이 먹으면 성숙했다고 말합니까? 그 사람을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남이 나를 바라보는 그 차이가 적을수록 철이 든 사람이지요. 미친 사람보고 ‘너 미쳤구나’라고 말할 때 ‘그래, 나 미쳤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친 사람입니까? 그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남이 바라볼 때 그는 미쳤는데,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은 미친놈이 아닙니까? 누가 그를 보고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누구 앞에서라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며 철이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 자리에 고통 받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교회로 인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비오는 저녁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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