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생이 보여준 易地思之의 모범
이 글은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주류에서 비주류로 살게 되어 이른바 인종적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실과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는 어렵긴 했지만 나름 자신을 계발하고 어느 정도 잘 지낼 수 있었던 데 비해, 한국에서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인성이나 배경 등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이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어떤 정책과 문화가 있어야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가장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은 법적·제도적 뒷받침이다. 한국에는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지 않다. 미국은 1860년대의 남북전쟁을 겪은 뒤 1960년대의 전국적인 인권운동을 거치면서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1964년 제정된 인권법은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반혐오법이나 인종차별금지법이 없다. 물론 한국의 헌법이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해마다 모든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학생교칙에는 인종과 관련한 욕설을 가장 큰 위반으로 규정하고 바로 퇴학까지 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내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한국의 여러 중고등학교 교칙에는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150만명을 넘어섰고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국내 외국인 주민이 490만명을 넘어 전체 국민의 1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볼 때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별을 금지하는 데 동원되는 다양한 용어들이 법적으로, 학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사실상 차별과 구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다문화’에 대한 용어 정의를 찾기가 힘든 것도 문제다. 말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어떻게 공용화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다문화’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없다.
사실상 다문화·다인종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한국사회를 순혈민족 국가로 보려는 경향도 성숙한 다문화사회를 위해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송사’(宋史)와 같은 여러 역사 자료들에서 드러난 대로 이미 고려시대 때 귀화한 인구가 총인구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피가 다민족적임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다문화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다른 국가 다른 민족 출신 부모의 자식이고 순혈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다문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 여러 가지 다문화 활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에게 강요되는 순혈주의적 배타성이었다.
이정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고등학교 12학년 (한겨레신문 오피니언에서)
인터넷 댓글에서 인종차별과 비하의 글이 난무한다.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이 그 대상인데,
조선족에 대한 욕설과 비토는 조금 충격적이다.
그런 댓글에 반대보다 찬성이 월등 많다는 건 더 충격적이다.
예전에 20여년만에 김포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일부러 끌고가 자기 공장 견학도 시켜주곤 낮술을 사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한 파카스탄 노동자를 보았다.
친구는 "얌마, 어디 가냐?" 물었다.
노동자는 "... 해요."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