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김수영, <여수>

원조시지프스 2014. 1. 25. 20:18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떠난

여행에서

전보도 안 치고

돌아오기를 잘했지

 

이 뜰에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아내의 비밀을 탐지하고

내가 없는 그날의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쳤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나를

놀래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동안의 부재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

 

상식에 취한 놈

상식에 취한

상식

상…… 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아직도

소록도의 하얀 바다에

두고

버리고

던지고 온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1961. 11. 10)

 

 

 

 

유의배 신부님의 한센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