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길

어느 대한민국 할머니 A Korea's Grandma

원조시지프스 2015. 9. 23. 17:20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레신문 <시니어 통신>에 71세의 한 할머니 글이 올라왔다.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수준급이지만 내용 자체가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석가탄신일 연휴를 맞아 조카 부부가 나를 만나러 왔다. 내가 워낙 늦둥이로 태어나 조카라고 해도 나이가 비슷하다. 질부는 내가 상당히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림이 워낙 빈틈이 없는데다 집안 가꾸는 것이 가히 예술적이라 나는 늘 그 집에 가면 주눅이 들 지경이다.

특별히 잘하는 음식도 없고 겨우겨우 눈가림으로 할 만큼만 하고 사는 내 살림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 집을 방문할 때 늘 먹거리를 장만해 온다. 내가 손님을 잘 대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 집에서 대접을 잘 받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럽다. 친구가 음식을 장만하려고 부엌에 들어가면 결사하고 붙들고는 있는 김치에 밥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새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차려 나오는 식탁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기본으로 준비된 찬이 있다는 말이다.

오랜 친구야 흉허물이 없지만 질부는 그렇지 않다. 몇 살 아래라고 하나 명색이 내가 시이모다. 서울 갈 때면 그 집에 늘 묵는데, 나랑 대화를 나누면서 그림자 어른거리듯 조금 움직인 것 같은데 찌개를 끓여낸 식탁이 그득그득 넘친다. 기본 밑반찬이 늘 그렇게 있단다. 그런 질부의 여행가방에서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반찬용기에 차곡차곡 담은 갖가지 밑반찬이 열 개나 나왔다. 우리 집에 있는 내내, 내가 솜씨를 부린 반찬은 필요 없다는 시위다. 좋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요즘 나는 요리전문 블로그에 자주 드나든다. 여자로 태어난 일생이니 보통 여자는 힘들이지 않고 잘한다는 요리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다. 요리를 잘하려면 우선 부엌과 친해야 한다.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워야 한다는데 나는 30분이 지나면 슬금슬금 머리부터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빨리 끝내고 싶어 중불에 끓이라는 것을 고열로 올려 푹푹 끓여낸다. 미리 양념해 두라는 것은 즉석에서 양념해 버무려 끝내버린다. 무슨 이유로 부엌 밖으로 탈출하려 서두르는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제 살길은 있다고 희한하게도 우리 식구들은 먹거리에 까다롭지 않다. 내 형편없는 음식 솜씨로도 시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며느리였다는 것이 재미있다.

최갑숙(71) 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

 

 

 

 

 

 

 

 

 

 

 

 

 

 

 

 

 

 

 

 

 



 

 

 

 

미국 미시간대학의 그로스먼 연구팀은 사회적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사고력이 나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했고 더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노인의 경험이 복잡한 갈등 상황을 좀더 쉽게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내니 깊게 고민할 일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카스텐슨 박사는 노화와 연관된 감정의 변화에 대해 연구해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조절력이 커지고 감정에 휘둘려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이 줄어드는 것을 밝혔습니다. 나이 들수록 긍정적 자극에 더 집중하고 불쾌한 감정은 빨리 잊고 좋은 기분은 더 오래간다는 실험 결과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뇌는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도록 변화합니다. 그래서 쉽게 기뻐하고 만족하며 크게 낙망하거나 오래 노여워하지도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의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90이 넘더라도 매일이 행복할 수 있겠지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뇌 안에 있는 행복을 찾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 활발해지니까요. 가끔은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 보세요. 세월로 익힌 노인의 지혜와 유쾌한 기분을 통해 노인의 역설이 나의 기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