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음악상 수상 거부한 류재준(43) 작곡가 /뉴시스 |
‘난파음악상’ 수상 거부한 류재준 작곡가
소프라노 임선혜씨도 수상 거부
54년만에 처음으로 수상자 없어
“예술가, 사회 외면은 비윤리적”
최근 작곡가 류재준(43)씨와 소프라노 임선혜(37)씨가 작곡가 홍난파(1898~1941)를 기리는 ‘제46대 난파음악상’ 수상을 잇달아 거부해 국내 음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상을 받기 싫다”는 이유로 작곡가 홍난파의 친일 행적에 문제를 제기한 류재준씨를 14일 밤 서울 방배동 자택 앞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에서 현대음악의 거장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0)를 사사한 작곡가다. 대표작 ‘진혼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등으로 국내보다 국외에 더 알려져 있다.
“우리 음악계가 홍난파의 과거 친일 행위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있어요. 홍난파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그가 서양음악을 한국에 처음 가져온 선구자이고 그의 업적을 기리자고 하면 누가 반대하겠어요. 그런데 난파기념사업회가 ‘난파음악상’을 가지고 홍난파의 친일행각을 포장하거나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데에 이용당하기 싫었습니다.”
그는 “홍난파가 일본강점기에 모진 고문을 받고 나서 친일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가 한국 음악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과오도 엄청난 것이 사실인데 이를 숨기고 포장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도음악협회(회장 오현규 난파기념사업회 회장)가 해마다 난파음악상 수상자를 초청해 벌이는 ‘난파음악회’ 소개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 자료는 “우리의 음악인을 우리 스스로 저버리는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아픈 역사 속에 저지른 과오를 과장된 평가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중한 우리의 음악인을 잃는 또 한번의 아픔을 겪게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홍난파의 과거를 소개하고 있다. 류씨는 “홍난파의 무엇이 ‘과장된 평가’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홍난파는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봉선화’를 작곡하고 미국유학 중에도 항일운동을 펼쳤으나, 일본 경찰에 검거된 뒤에는 사상 전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대표적인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문화위원으로 활동했고, ‘희망의 아침’, ‘태평양행진곡’, ‘출정병사를 보내는 노래’, ‘애국행진곡’ 등의 친일 가요를 작곡한 사실이 밝혀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난파음악상은 해마다 한국 음악을 빛나게 한 음악인에게 주어지는데, 난파기념사업회에서 음악가를 선정하고 경기도지회에서 시상을 주관한다. 그동안 정경화·백건우·정명훈·신영옥·조수미·장한나 등이 수상하였다.
류씨는 “친일파라는 행적을 문제 삼는 것보다는 그것을 현재에 가져와서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서 입맛에 맞춰서 재단질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저의 수상 거부로 기존 수상자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사람들이 저에게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였고 나치가 이용했다. 그렇다고 바그너의 위대한 음악을 저버려야 하느냐?’라고 말해요. 저 또한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인 것은 그 당시 사회상이 만든 부작용이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홍난파가 친일을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치가 그걸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고 장난친 것은 굉장히 위험한 거죠.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친일 형태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저는 홍난파를 무조건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적을 현대의 시각으로 미화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친일까지도 덮여두려는 일련의 시도들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수상을 거부하고 난 뒤 누군가 ‘왜 문제를 일으키느냐?’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예술가가 사회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도 평생을 독재에 대항해서 싸웠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난파음악상 수상 거부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는 “소신있는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견과 “예술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기특한 면도 있네… 이 친구, 골 때리는 녀석입니다”라는 글을 달았다. “많은 음악인이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연주자들이 ‘할 말은 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피아니스트 이아무개 선생이나 바이올리니스트 김아무개 선생은 ‘독주회에서 너의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난파음악상’ 문제나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는 우리 역사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서 불거진 문제”라며 “저로 비롯된 논란이 친일 예술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