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단풍! 좋지만
내 몸의 잎사귀
귀때기가 얇아지는
11월은 불안하다
어디서
죽은 풀무치 소리를 내면서
프로판가스가 자꾸만 새고 있을 11월
- 서정춘, <귀> 중, 시와시학사, 2005년 -
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놓은 게지
- 이호준,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 중, 천년의 시작 -
11월은 모두가 혼자 있기 좋은 달
방아깨비의 높이가 점점 사라지는
오후 그리고 풀밭
내겐 도무지
서러워할 까닭이 없다
찬찬히 눕는 엷은 빛을
목이 긴 국자로 떠서
다시 태양에게 돌려보낸다
커다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오도카니 앉아 있다
거미의 야심에
씹하듯 동참한다
저놈의 생각에
구멍을 내야지
흔들어버려야지
거미가 으앙으앙
발을 뻗고 울게 해야지
생각은 생각으로
쌩을 깔 뿐
달아나는 풍경 한 줄
끌어오지 못한다
기껏해야
아이가 풀짝거리며 잡았다 놓아준
기간의 노란 부리 하나
무릎 위에 놓고
유심히 닦는다
안경이 안경을 닦듯
뒤집은 돌을
다시 뒤집어놓듯
새벽녘 새끼 고양이처럼
나를 나 몰래 다녀간다
금방 있던 거미가 없다
- 유강희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중, 문학동네 시인선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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