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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털리는 미디어 Daum

원조시지프스 2013. 11. 12. 07:40

 

 

 

어제 한겨레 신문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원 임정옥 씨의 컬럼 <초감시사회>가 실렸다. 그의 직책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미디어를 다룰 인물 같은데 컬럼의 결론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는 삶의 지혜라고 해야 할 듯싶다'이다. 뭔 종교인 설법인줄 알았다. [그의 글 보기]

 

오늘 같은 신문에서 시민 논객 한 분이 제대로 짚어주셨다.

 

임정욱씨는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전화통화나 이메일을 감시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며 내세운 예로 미국 인기 레스토랑 종업원을 감시하는 주문시스템 소프트웨어, 해충 제거 회사가 직원들의 스마트폰에 몰래 설치한 위치 추적 소프트웨어를 언급하며 “우리는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 (중략) 나의 사생활은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체념하자. (중략)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삶의 지혜라고 해야 할 듯”으로 말을 맺었다.

 

글쓴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경계하고 삶을 올바르고 투명하게 살자는 순수한 의도에서 이 글을 썼을 거라 추측하지만, 시민의식이 저열한 이 나라에선 이 글이 의도한 방향에서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 가능성에서도 기본적 시민의식을 상당히 왜곡시킬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감시 자체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이 일부 농땡이 치거나 삥땅하는 직원들을 적발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정직하게 행동하게 된 것”이라고 미화해 감시 그 자체가 지닌 반인륜적인 모습에 둔감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사람을 신뢰의 대상이 아닌 감시의 목표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일부 직원의 문제를 해당 회사 전체 직원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일부 학생이 자살한다고 학교 전체 창문에 창살을 달자거나 일부 꽃뱀이 있다고 해서 성범죄 피해자들을 오히려 색안경 끼고 보는 이 나라에선, 성숙한 사회의 무형의 기본적 가치인 신뢰를 잊어버리게 하고 사회 전반에 감시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나는 우리나라가 이 셋째 이유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낮다고 본다. 왜 낮은 계층의 부조리 문제를 언급하며 소위 높은 계층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가. 글을 쓰는 사람이 상위 계층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불의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나 마찬가지다. 하위 계층이 저지르는 부조리에 비해 상위 계층의 부조리는 훨씬 해악이 큰 것이 당연하므로 선진국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감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체제가 발달해 있다. 후진국의 후진 시민의식일수록 권력자들은 놔두고 하층 시민들만 못살게 굴지 않는가.

 

글쓴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글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회사와 가정을 위해 매일 바쁜 사람들이 혹시나 위 세 가지 비판 중 하나라도 놓칠까 하는 노파심에서 글을 쓴다.

 

이승재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이승재 님의 점잖고 날카로운 관점과 우려에 동의하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사회적 참여에 큰 감사를 드린다.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에게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차면 넘친다. 그런 정신과 술수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네이버를 따라잡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