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월간문예지 <현대문학>의 민낯

원조시지프스 2013. 12. 16. 07:41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의 사주, 정확히는 이 잡지책 사장 양숙진 씨의 정체성이 제대로 드러났다.

 

 

원로 작가 이제하(76)

월간지 ‘현대문학’ 이제하 소설 거부
정찬 소설도 같은 이유로 게재 안돼
문인들 “기고 거부” 등 성토 잇따라

전통의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이 유신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원로 작가의 소설 연재를 거부해 파문이 일고 있다.

 

원로 작가 이제하(76·사진)씨는 <현대문학> 1월호부터 소설을 연재하기로 하고 원고를 보냈으나 1회분에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 등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동짓달 초두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는다. 새해부터 <현대문학>에 연재하기로 한 소설이 컷 당한 것이다. 에세이 연재를 소설 연재로 바꿀 때 정치 얘기는 피해 달라는 주문이어서 ‘그런 얘기 아녜요. 쓴 적도 없고. 선교사 얘기예요’라고 해명까지 했는데 (…) 백여 매 써서 넘긴 1회분 배경에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시대 배경을 서술하는 단어 두 개가 들어갔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썼다.

 

<현대문학>의 이제하 소설 게재 거부 사실이 알려지자 문인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시영 시인은 12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제하 선생은 (…) 순수한 영혼의 자유주의 작가입니다. 그런 분의 연재소설을 거부할 권리가 잡지사에 있는지? 차라리 ‘유신문학’으로 제호를 변경하든가!”라며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인 안도현 역시 트위터 글에서 “작가와 독자들이 <현대문학> 거부하는 일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현대문학>은 중견 작가 정찬씨의 연재소설 역시 정치적 이유로 게재를 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정씨는 <현대문학> 올 10월호부터 장편 ‘길, 저쪽’을 연재하기로 했으나 연재 1회분 원고를 읽어 본 양숙진 주간이 ‘<현대문학>은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정치적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은 싣기 곤란하다’는 취지의 전자우편을 보내 게재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내 소설은 80년대 운동권 출신 남자와 연인의 사랑을 다룬 작품인데, 2012년 대선 결과에 대한 서술과 70년대 유신 시절 풍경을 회고한 부분이 걸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지난 9월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 네 편과 그를 높게 평가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을 실어 문단 안팎에서 구설을 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평론가 양경언씨는 이 잡지 11월호에 격월평을 쓰면서 이태동 교수의 비평문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부분을 양 주간의 요청으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현대문학>은 1955년 창간돼 12월호로 통권 708호를 기록한 국내 최장수 문예지다. 1988년 대한교과서가 인수한 뒤 현재 사주 일가인 양숙진씨가 주간을 맡고 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이에 대한 후속 보도 격으로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가 쓴 <기자의 눈> 칼럼이 있다. 박 기자에 따르면,

 

"일련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불똥은 정치권에까지 튀었다. 민주당은 13일 성명을 내고 "<현대문학>은 이것이 자체 검열인가, 외부 압력인가" 밝히라고 요구했다. 양 주간이 언론과 접촉을 피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박 대통령 지지자인 양 주간의 독단과 전횡이라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1997년부터 <현대문학>을 맡아온 그는 박 대통령의 어린 시절에 깊은 연민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60대 지지자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현대문학> 사태는 느닷없이 7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유신 복고'의 사회적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이지만, 문학 쪽은 간단치 않은 사정이 하나 더 있다. 소위 말하는 문학의 위기다. <현대문학>은 좋은 작가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낸 매우 중요한 문예지이고, 그런 만큼 작가들 대부분이 이 잡지가 혹여라도 폐간될까 안타까움 속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다. "소중한 문예지가 자본주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훼손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걱정은 소설 연재를 거부 당한 정찬씨의 말이다. 서정인씨는 한 발 더 나아가 "후견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선 문예지를 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나무라야지 표현의 자유만 외치는 것도 아전인수 같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조만간 편집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잡지에 공표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1월호는 제작이 상당 부분 진행돼 2월호에나 실릴 예정이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정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시대의 수구적 분위기에 편승해온 편집주간이 이 소중한 잡지의 전통을 훼손한 데 책임지고 편집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획기적 내용이 실려 있기를 기대한다."

 

군바리에게서 총을 빼앗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말, 이 자의 사퇴, 학수고대한다.

 

 

 

오늘은 보다 못해

 

시인께서 <현대문학에게>라는 편지를 보내셨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이었어. 나는 용돈이 생기면 헌책방에서 너를 한두 권씩 사서 모았지. 우리 문학사를 수놓은 빛나는 시인과 작가들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설렜지. 등단을 하고 나서 네가 원고청탁서를 처음 보내왔을 때 내가 얼마나 공중으로 뛰어올랐는지 너는 아니? 하늘이 그리 높지 않더라고! 매년 1월호에 싣는 문인주소록에 내 이름이 처음 올랐을 때도 그랬을 거야. 내 이름이 난다 긴다 하는 문단의 대가들과 나란히 박혀 있었거든. 1955년에 태어난 너는 말 그대로 국내 최장수 문예지잖아. 한국문학의 자존심이잖아. 가끔 원고료가 생기면 나는 오래전부터 꼬박꼬박 정기구독비로 냈지. 너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던 거야.

 

 왜 이렇게 되었니? 서정인 선생님의 소설을 두 차례나 연재하고 나서 왜 세 번째 원고를 싣지 못하겠다고 했니? 소설에 박정희를 묘사하면 안 되는 거니? 이제하 선생님 원고는 왜 첫 회부터 거부했니? 소설에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니? 이러는 거 아니다. 우리 문단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들의 글을 이렇게 막무가내 찍어내서 무슨 덕을 보려고? 그리고 정찬 선생님 소설도 연재하기로 해놓고 발행인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고? 정치적 색채 때문이라고? 그래, 9월호에 수필가 박근혜의 글을 실으며 찬양한 일은 참으로 순수한 의도였구나? 너 정말 이러는 거 아니다. 작가의 영혼을 이렇게 짓뭉개는 게 아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