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은 전직 대통령을 소재로 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개인사에 함몰되지 않고 공권력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맞서 인권·사상과 표현의 자유 같은 ‘변하지 않는 상식’을 위해 싸우는 본격 법정영화다. 위더스필름 제공 |
영화 ‘변호인’ 먼저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사보다
공권력에 맞서는 투쟁에 초점
송강호의 3분 법정변호가 ‘압권’
적절한 유머와 주제의식이 조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전두환 정권시절 부산지역 최대 용공조작 사건 ‘부림사건’에 대해 “내 삶을 바꾸었던 바로 그 사건”이라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있었다…. 그 어머니는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김주열을 생각하면서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영도다리 아래부터 동래산성 풀밭까지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19일 개봉)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을 뿐 영화 내용은 허구’라고 밝힌다. 하지만 지난 29일 공개된 영화를 보면 책 <운명이다>에 나온 내용을 영화의 트리트먼트(줄거리 전개를 담은 글)로 썼다고 느낄 만큼 사실에 뼈대를 두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부림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과정뿐 아니라 불법구금된 피해자들한테 가해지는 가혹한 고문장면, 시신이라도 찾겠다던 어머니의 일화나 당시 부산에서 이름 높던 김광일·이홍록 같은 인권변호사들이 “변호에 나설 경우 함께 엮어 넣겠다”는 검찰 쪽 협박을 받아 ‘변호사 노무현’한테 부림사건이 넘어오게 된 일들이 모두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한 인물의 개인사에 주목하는 대신 법의 원칙과 상식으로 공권력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맞선다는 내용의 본격 법정 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약하지만 살아있는 거다. 계란이 부딪쳐 바위를 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졸에 돈도 빽도 없이’ 사법시험을 통과해 돈 버는 데 여념이 없던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우연한 계기로 ‘부림 사건’을 맡게 된다. 고시공부 시절 밥집 주인 순애(김영애)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이 사건에 연루돼 국가전복을 계획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불법구금과 살인적인 고문을 당한다. 여기에 맞서 송 변호사가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5차례 공판을 벌이면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법정 투쟁을 벌인다.
영화는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실존 인물을 소재로 적절한 유머와 깊이 있는 주제 의식, 잘 짜인 극적 구성이 조화를 이뤄 묵직한 재미를 던져준다. 여기에 송강호를 비롯해 김영애, 곽도원, 오달수(동호 역) 등 중량감 넘치는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영화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영화 <설국열차>, <관상>에서 올해 1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송강호가 “내 작은 진심은 담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만큼 뜨거운 연기를 펼친다. 2차 공판에서 3분에 이르는 법정 변호를 롱테이크(편집없이 한 장면으로 길게 찍기)로 찍은 장면은 숨을 죽이게 할 만큼 압권이다. 고문 형사 차동영(곽도원)을 증인으로 불러 “국가란 국민”이라고 절규하며 헌법의 가치를 역설하는 장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선고 공판에서 두 차례의 반전이 교차하며 극적인 결말을 맺은 뒤, 마지막 장면은 87년 6월 항쟁 당시 부산 거리를 비춘다. 송 변호사가 전경과 군중 사이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사진으로 기억되는 당시 ‘변호사 노무현’의 모습을 그대로 갖다 쓴 것처럼 보인다. 양우석 감독은 “끝내 우리가 지지 않은 싸움을 했다는 것을 전달해 관객들이 따뜻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게 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송 변호사는 진우라는 인물을 변호하지만, 실은 그가 ‘변하지 않는 상식’을 변호한 것이란 뜻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노무현 연기한 송강호 “정치적 부담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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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제작 발표회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인물은 단연 배우 송강호(46)다. 그는 지난 8월과 9월 잇따라 <설국열차>(934만명)와 <관상>(913만명) 두 편으로 무려 1847만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 송강호’란 이름을 앞세운 두 영화가 벌어들인 매출액만 1300억원을 넘는다.
다음달 19일 개봉을 앞둔 <변호인>은 송강호가 올해를 마무리하는 영화다. <설국열차>와 <관상>에서 각각 에스에프 액션과 사극이란 장르에 첫 도전했던 그는 이번엔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전직 대통령 캐릭터를 연기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불법구금과 살인적인 고문을 가했던 용공조작 사건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변호사 역할에 당시 실제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영돼 일찍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내 최고의 배우로서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는 전직 대통령 역할이 꺼려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영화 외적인 논란을 부르거나 정치적 잣대로 평가받으려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담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19일 서울 압구정 씨지브이(CGV)에서 열린 <변호인>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한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와 함께 호흡했던 인물을 통해 힘겨웠던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을 그린 대중 영화”라며 “그 시대를 열정 하나로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가 관객들한테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고졸에 돈도 빽도 없이 사법고시를 패스한’ 변호사 송우석이 우연한 계기로 ‘부림사건’을 맡게 되면서, 법의 원칙과 상식을 앞세워 재판부와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동료 배우들이 “송강호의 명품 연기가 나온다”고 입을 모은 마지막 공판 장면이 기대를 모은다. 이날 짧은 분량이지만 공개된 영상에서 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가 국민입니다”라고 재판부를 향해 절규하는 모습은 송강호만의 강한 흡입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헌법이 우리 생활 속에서 피부에 와닿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연기를 하면서 헌법이 그렇게 아름다운 언어와 이상을 품고 만들어진 것인지 새삼 느꼈다”며 이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오달수, 임시완, 곽도원 등 100여명에 이르는 배우와 제작진이 모두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 참여를 결정했는데 송강호만이 한차례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돌아가신 분과 관련된 사건이 모티브가 됐기 때문에 ‘누를 끼치지 않고 그분의 인생의 단면에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감히 한번 거절을 했다. 그렇지만 시나리오에서 잊혀지지 않는 얘기들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여서 배우로서 호기심과 도전의식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