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연인들이여, 어울려 만족하는 그대들이여,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너희들은 손을 꼭 잡는다. 그것으로 증명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 자신의 두 손도 서로를 느끼고, 혹은 그 두 손 안에
지친 얼굴을 묻고 쉬는 일도 있다. 그것이 얼마간은
나 스스로를 감지하게도 한다. 허나 누가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연인들이여, 서로가 상대의 환희 속에서
성장하는 너희들. 끝내는 압도되는 상대가
<이제 그만>, 하고 애원하는 너희들 - 서로의 애무 속에서
풍년 든 포도처럼 풍요하게 영그는 너희들.
다만 상대가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소멸하는 너희들. 너희에게 묻는다. 우리들 인간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
너희들이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은, 애무가 시간을 멈추기 때문이다.
애정 깊은 너희들이 가리고 있는
그 장소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아래서 순수한 지속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포옹이 영원하기를 약속하리라.
허나 첫 시선의 놀라움과 창가에서의 그리움을 이겨 내고,
함께 거닐던 <첫> 산책, 단 한 번뿐이던 그 정원에서의 산책을 견뎌 냈을 때,
연인들이여, 그때에도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후략)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 (열린책들, 2014) 중 제2비가 -
여태까지 안 잤니
얘는 참
알았다 알았어
내가 있어야겠구나
너한테 내가 필요한 건
사랑이다
춥니
그런 초로인생 덧없다 생각되니
그렇게 생각될 때
고요한 눈매의 한 사람을 만나면
질긴 힘줄 질겅질겅 씹으며
인생 짧은 게
하늘의 영광이며
땅 위의 지복임을
둘이서 함께 느껴간다
내 몸 부서지어
흐른다
사랑할 때
사람은 그 한때에
사는 거다
그밖의 덧없음
들춰내어 서글퍼지면
서글프기에 즐겁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곧잘 살아간다
배고플 때 밥 먹고
그리고 너는
여기저기 밥먹음의
비리와도 싸운다
그래서 외로울 때
아직 자지 않고 있었구나
시를 쓰고 있었구나
잘 살자.
- 김영승, 추운 날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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