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명계남, 2006년 당시의 콘트라베이스

원조시지프스 2013. 7. 15. 08:10

김소영 기자 / 20060310 18:08

 

명계남씨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를 보러갔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올린 작품이라 호기심도 

있었지만, 지금 못 보면 앞으로 볼 기회가 거의 없을 것 같아 바쁘다는 친구를 졸라서 함께 갔습니다.

명배우는 역시 '명'배우였습니다. 동료 없이 두 시간을 무대에서 혼자 떠든다는(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고른 단어인데 나쁜 의미로 쓴 것은 절대 아닙니다)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고, 또 무서운 것인가요.

정치색이 짙어 자신의 연기가 제 색깔 그대로 전해지지 못할까 염려했던 그 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명계남씨는 35살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화했습니다.

물론 돋보기를 들고 기를 쓰고 본다면 100% 완벽한 연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인 '사라'를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몇몇 장면은 굳이 몸짓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지만, (극 전개상 사라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뭐, 보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사실, 그 연극에서 저의 눈길을 끈 것은 공연의 시작부분이었습니다.

명계남씨가 무대에 걸어 나와서 관객에게 인사를 하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연극은 영화와는 달리 배우와 관객이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관객이 매번 다르듯이 배우도 매번 

다릅니다. 심리상태가 다르니까요. 예를 들면 후배랑 당구를 쳐서 10만원을 따면 그날 공연은 기분이 좋지

요. 하지만 영화사 빚쟁이들이 찾아오면 반대가 됩니다. (이때 관객 중 한 명이 "오늘은 어떠신가요? " 

물어 봤습니다.) 오늘이요? 오늘은 괜찮습니다. 허허..."

 

그리고 나서 연극의 원작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야기를 하고, 최근에 찍은 영화 <손님은 왕이다>가 

장사가 좀 안 된다(?)는 애교 섞인 농담을 살짝 꺼내면서 정말로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오기현 감독과의 

인연을 말해줍니다. 정말 오감독을 아끼는 모양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사람이 이 명계남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를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부터 

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초 단위로 웃음을 선사하는 바람잡이가 나와 시선을 모으고, 암전이 흐른 후 조명이 밝아
지면 배우가 어느새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는 통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연기가 시작 되었나 알아차리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극에 집중하게 되면서, 저 사람이
명계남이야? 저렇게 생겼구나.. 저런 목소리구나.. 하며 잠깐 낯설어지고 탐색하는 시간의 낭비가 

줄었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배우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공연 초반 5분도 안돼 울리는 핸드폰 소리와 당당한 통화소리는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명계남씨는 모든 것을 통달한 채 관객들이 자신을 보건말건

콘트라베이스를 끌어안더군요.

 


 

김소영 기자의 또 다른 글.

 

마지막으로 영화 <킹콩>을 본 소감에 자신의 소회를 덧붙인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공연 안내책자에 

나온 글인데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서요.

 

분장실에서 - 명계남

 

킹콩을 보았습니다. 1933년에 처음으로 영화의 소재가 된 후 그 뻔한 얘기야 더 할 것이 없겠지요. 천하의 피터잭슨이 만든 영화라도 괴력을 지닌 야생의 고릴라가 인간에게 포획되어 희롱당하다가 죽게 된다는 기본 얼개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킹콩을 죽게 만들고, 그 죽음에 붙이는 해석이 ‘사랑 때문’이라고 했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킹콩 영화가 서너 번씩 리메이크 되어 오면서, 그 때마다 무슨 대단한 얘기인양, 감동적인 양 선전되는 모티브인데 이거야 말로 근 70년이 넘도록 서구사회가 자연을 보는 눈이 한 치도 ‘인간의 틀’을 뛰어 넘은 적이 없다는 뜻이고, 피터잭슨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으로 보여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 말미에 호기심 촐랑대기 좋아하는 기자 하나가 묻습니다. “아니, 왜 저 높은데 올라가서 죽음을 자처하

는 거야?”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툭 내뱉지요. “짐승이 무슨 생각이 있어? 그냥 기관총 맞아 죽은

거지” 그러자 댄햄이 산더미 같은 킹콩의 시신 옆에서 감동 먹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사랑이 그를 죽게 만

들었어...”

글쎄....사랑 때문 인가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너무나 안이하지 않나요? 인간, 특히 서양 백인 중심적이어

서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 들지 않던가요? 백인 여자의 미모에 반해버린 주제넘은 짐승? 짐승이라도 뉴욕

출신 여자한테는 매혹 당한다? 영화 속 대박에 눈 먼 속물 영화감독 칼 덴햄(잭 블랙 분)의 대사가 그대로 이

영화가 주제라니요?

킹콩에게 앤은 처음으로 두려워 소리 지르지 않은 피조물-여자가 아니라-이 아니었을까요? 자기 앞에서 

자기 눈을 보면서 춤을 추고, 덤블링을 하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져글링을 하면서 웃겨주고, 석양 노을에

빠져 있는 그에게 저런걸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준, 킹콩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옆에서 같이

함께 아름답다고 느낀 존재....

킹콩은 해골섬의 절대자였습니다. 진화가 정지된 섬에서 공룡조차도 충돌을 꺼려하는 유일한 영장류. 당연

히 외로웠을 것입니다. 아주 많이....

그렇게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못하던 킹콩 앞에 앤이 처음으로 그의 감정을 읽으려고 애씁니다. 브로드웨이

극장을 전전하는 안 팔리는 3류 코미디 배우인 앤의 몸짓이 화석이 된 줄 알았던 킹콩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앤은 킹콩 앞에서 최고의 연기를 한 셈이지요. 앤을 보면서 킹콩은 처음으로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

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아닌가요? 그런데 이름 하여 ‘문명사회’의 인간은 킹콩의 이런 마음을 이용해

유인하고, 쇠사슬에 묶어 구경거리로 내돌립니다. 


킹콩을 죽게 만든 게 사랑이라고요? 자기와 통하는 어떤 존재를 아끼고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킹콩을 죽인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조차도 미끼삼는 문명을 가장한 인간의 탐욕, 허

장성세의 욕망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킹콩은 소통하고 싶었고, 마음 맞는 친구를 갖고 싶었던 것이지 사랑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 그럼 뉴욕에서 배 타고 온 야생동물 사냥꾼들이 야만인가요, 아니면 친

구와 함께 있고 싶었던 킹콩이 짐승인가요?

얼마 전 영화 ‘손님은 왕이다’ 촬영을 끝냈습니다. 몇 차례 기자들에게 촬영장을 공개하고, 인터뷰도 했습니

다. 그리고 나온 기사들은 조연 단역 배우가 첫 주연을 맡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많았습니다. 주연

을 맡으니 어떠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매우 저널다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제게 이 영화는 생애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배우란 연기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사람들끼리 소통하게 만드는 것

을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킹콩의 앤 처럼. 그리고 제게 배우란 주어진 역을 하는 사람이지, 역을 고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나, 살고 싶은 대로 계획대로 사는 인생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그런 인

생을 무대에서 혹은 스크린에서 대신 사는 배우가 역을 고르는 것은 마치 삶을 골라 살겠다는 것과 같습니

다.

‘손님은 왕이다’의 김양길은 오랜만에 저에게 주어진 ‘배역’이었습니다. 제가 제게 닥쳐오는 인생의 희로애

락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김양길은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차이가 없는, 제게 주어진 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후 다시 어떤 역이 다시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김양길 역이 배우로서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속 명계남이라는 배우가

맡은 역을 통해 세상과 대화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말하자면, ‘손님은 왕이다’는 주연이

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지막 영화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배우로서 또 다른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에서 말입

니다. 배역과 인생을 고를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든 가장 행복한 한 순간은 고를 수 있습니다. 제 몸을 거쳐

간 수많은 인생 중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역.... 콘트라베이스. 


영화와 마찬가지로 무대가 저를 더 불러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배우로서 마지막 연기를 각오해야 하는

게 서럽지도 분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연기 인생의 하이라이트였을 무대 위에

서 다시 살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무대의 내 몸짓에 단 한 사람이라도 감동한다면, 그 사람

과 세상이 소통한다면 배우로서 더 이상 행복한 일은 없을 듯합니다. 이렇게 내 배우 인생을 마칠 수 있기만

을 바랍니다.

 

김소영 기자 / 20060310 18:08

 


 


눈이 쬐금만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글이면 글, 글씨면 글씨

연기면 연기, 봉하면 봉하

못 하는 게 없는 우리의 명계남

 

딱 한 달을 채워 무대에서 보여준 열연, 수고 많았습니다.

 

 

콘트라베이스(쥐스킨트).pptx

 

블로그에 찾아오신 분들을 위해 드립니다.

몇 쪽 안 되는 대본을 읽어보시면 명계남의 콘트라베이스가

왜 그렇게 찬사를 받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콘트라베이스(쥐스킨트).pptx
0.1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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