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길

컴퓨터 (1) 분해

원조시지프스 2013. 12. 17. 20:50

 처음에 개인용(personal) 컴퓨터(computer)를 장만한 것은 순전히 아래아 한글 때문이었다.

 

 

 

분해는 나사가 풀어져 빠지는 곳부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잘 될 때까지 수정과 가필이 무한대로 허용되는 기계는 자유 그 자체였다.

 

 

쥐새끼 내곡동 사건은 대체 어뜨케 되고 있는 걸까?

나중에야 이런 개인 취미 용도의 컴퓨터 환경이 도래하기까지 3세대의 산수용 기계 역사가 있음을 알았다.

 

 

"파워 켜!" 할 때 그 파워어셈블리의 속모습


초기 디지털 컴퓨터의 용도는 주로 군사용도로 사람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건

 

 

케이스 철판 구멍이 그냥 무게 줄이려고 뚫어놓은 게 아니었다. 

 

당근 원래 컴퓨터가 탄생하게 된 기원과도 일맥상통한다.

 

 

타이를 잘라내다 결국 파워케이블 내장에 칼집을 내고 말았다. 

 

컴퓨터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입력, 제어, 기억, 연산, 출력 다섯 가지 기능으로 구성되는데

 

 

6년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런 것도 있었다. 

 

이를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몸으로 비유하자면 눈/귀, 두뇌, (입을 포함한) 배설기관에 해당된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컴퓨터 있냐고 ~


입이 왜 배설기관에 해당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컴퓨터 다운의 원인, 시피유 쿨러.

 

그 구조를 조금만 더 생각해보거나 조중동의 행태를 보면 다 안다.

 

 

두뇌를 식혀 주는 팬


따라서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제어(control)기능을 갖춘 두뇌이고,

 

난 파워

 

이를 담당하는 장치가 바로 CPU, 중앙처리장치(Central Processing Unit)이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열은 팬 하나로 감당이 안 된다ㅜㅜ


여기에서 다양한 국민의 프로그램의 명령을 해석하여 모든 장치의 동작을 지시, 감독, 통제한다.

 

 

부채질 전문 내시 -_-

 

즉, 인지된 외부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여 몸의 각 기관이 할 일을 지정하고 기관들의 협업을 조정한다. 
 

 

그래서 두뇌, CPU가 제 기능을 다 할 때야 몸의 각 기능이 편해 우리 몸이 편하고, 반면

 

 

불통철동방어막 CPU 하우싱

CPU가 쏟아져들어오는 시청각적 정보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할 때 몸에 병이 난다. 

 

 

대체 이것을 어뜨케 열어야 하는 것이야;;

 

 

허탈하고 아이러니한 게

 

 

대부분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개인용 컴퓨터에 설치된

 

 

 CPU가 뭔데?

 

CPU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지도 못하며 

 

 

그건 원래 그렇게 있는 것 아니었어?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지못미 나의 CPU ㅜㅜ 

 

 

님을 위한 RAM 메모리가 되어...

 


 

이 일기를 쓴 후 얼마 되지 않아 올라온 한겨레 기사.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 사후 59년만에 사면
2차대전 승리의 숨은 주역
동성애죄 처벌 2년뒤 자살
한겨레 정세라 기자 메일보내기
비운의 수학천재 앨런 튜링

2차대전 승리의 숨은 주역
동성애죄 처벌 2년뒤 자살

비운의 수학천재 앨런 튜링(사진)이 사후 59년 만에 동성을 사랑한 ‘죄’를 사면받았다고 24일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가디언>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실특별사면권을 행사해 법무부 장관이 요청한 튜링의 사면을 승인했다”며 “그는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 전쟁(2차 세계대전) 종식을 2년 가량 앞당겼다”고 짚었다. 튜링 탄생 100돌을 앞두고 영국 자유민주당 소속 의원이 지난해 5월 튜링 사면 관련 법안을 제출했고, 법안이 상·하원을 차례로 통과해 23일 사면이 시행됐다. 여왕이 사면권을 행사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번째로, 상당히 드문 일이다.

 

영국의 수학자 튜링은 24살이던 1936년에 현대 컴퓨터의 원형이 된 ‘튜링 머신’ 개념을 고안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난공불락의 독일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초보적 연산 컴퓨터인 봄베와 콜로서스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영국은 콜로서스로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 1944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튜링이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공훈을 세운 튜링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던 국가폭력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절도 피해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를 한 증거가 포착됐고 1952년 중대 외설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여성호르몬을 정기적으로 주사받는 화학적 거세를 택하거나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범죄자로서 비밀정보 취급 허가를 잃은 탓에 영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수행하던 암호 해독 연구를 그만둬야만 했다. 그는 수모와 오욕을 겪은 지 2년 만인 1954년 41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문 흔적을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일부에선 사고사라거나 정보기관의 암살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그의 사면을 둘러싸고는 법적·사회적 논란이 꼬리를 물었다. 영국 정부는 처음엔 튜링의 유죄 판결이 당시 법 체계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졌으며, 다른 이들은 놔두고 튜링만 사면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사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 등 유명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사면 청원을 하자 태도를 바꿨다. 2011년 12월에 시작된 온라인 사면 청원은 지난해 11월까지 진행됐는데 3만7404명이 서명했다. 튜링의 사면이 그의 업적에 대한 인식을 높여줄 것이란 의견과 함께 아주 훌륭한 개인은 다른 모든 보통 사람들과 법적으로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