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길

69명 무명씨들 커먼센터 개관전 <오늘의 살롱>

원조시지프스 2014. 4. 28. 14:55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23-2. 골격만 남은 건물이니 바깥에 간판이나 제대로 있겠나. 그러나 멀리서도 눈치 챌 수 있게 건물 전부를 간판으로 채용한 센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발치에 시멘트 블록 몇 장 쌓여 있고 그 위에 각 한 장짜리 전시회 소개 인쇄물과 위치별 참여 작가 이름 인쇄물이 쌓여 있다.

 

 

1층은 원래 중국집이었다고. 한 공간에 예수를 상기시키는 두 상을 집어넣은 유화가 대화를 청한다.

둘 중 하나를 마리아로 대체해도 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건물 뒤쪽 바깥 계단이다. 국민학교 때 장학사님 오신다고 난리법석 떨던 그 수준으로 마당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 재떨이에 꽁초 하나 없다. 힘과 능력이 닿는 데까지 벗기고 쓸고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빗질과 붓질은 미술인의 탈렌트 ㅜㅜ

 

 

 

 

철거를 기다리거나 끈덕지게 내 집을 사수하는 주변 풍광.

 

 

여인숙 아니면 사창가로 쓰였을 방들이 각 층에 병영처럼 능률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접 받는 대가라면 뻥 뚫린 액자 하나 걸어놓고 제목만 써넣어도 작품이 될 세월의 흔적.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심지, 구름, 골프채.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난히 밝은 방에서 팝아트는 고문도 되는 구나

 

 

<오늘의 살롱>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88만원 세대에 속한다. 대부분 1984~5년생. 우연하게 채집된 총 69명이 150여 점을 출품했다고. 그러나 굳이 특정 세대의 출현이라는 선언적 성격은 유보한다. 단지 오늘의 회화적 경향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단다.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백석의 산숙(山宿)에서

 

2층과 3층 사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이 계단을 거쳐갔을까

 

 

생일파티도 있었겠지.

피같이 붉은 케이크 위에 초 대신 남녀 두 사람이 파묻힌 듯 앉아 있다.

 

 

각 층의 계단끝에 센터 당번이 앉는 의자가 있는데 그것조차 건물의 본래 기능들과 연관되어 생각이 이어진다.

 

 

 

4층 제일 구석 방 둘은 나머지 방들과 달랐다. X 테이프 대신 버티컬 블라인드 커튼까지 드리워져 있다.

 

 

 

자물쇠도 다르고, 벽엔 타일도 두르고, 바닥재도 타일로 깔아 전두환적 분위기가 압도한다.

새 벽지를 붙인 센터 관리진의 투자와 수고로

 

 

 

방 하나가 전체적으로 별개의 독립된 작품이 되었다.

방 주인일까? 그림 속의 그림. 개 오너는 쉽게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법.

 

 

 

방 구조가 명바기다.

안쪽에 욕실만한 방이 따로 있고 벽에 구멍이 나 있다.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구조.

 

 

벽에 걸린 눈깔 모음 팝아트가 불 난 상상력에 기름을 들이 붙는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얼마나 보고 즐겼을꺼나 ~

 

 

센터 건물 건너편 토마스의 집. 힘든 국민에게 밥 한끼 무료로 제공하는 곳.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그때서야 이 그림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69인 작가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