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길

천상병: 꽃의 위치에 대하여

원조시지프스 2015. 12. 8. 11:14




꽃이 하등 이런 꼬락서니로 필게 뭐람

아름답기 짝이 없고 상냥하고 소리 없고

영 터무니없이 초대인적이기도 하구나


현명한 인간도 웬만큼 해서는 당하지 못하리니.....

어떤 절색황후께서도 되려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이름 짓기가 더러 있었지 않는가 싶다.


미스터 유니버시티일지라도 우락부락해도.....

과연 이 꽃송이를 함부로 꺾을 수가 있을까.....

한다는 수작이 그 찬송가가 아니었을까.....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멸치 국물 냄새가 난다

광산촌 외진 정거장 가까운 대포집

손 없는 술청

연탄 난로 위에 끓어넘는

틀국수 냄새가 난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기차바퀴 소리가 들린다

갯비린내 싣고 소금밭을 지나는

주을이라 군자의 협궤차 소리가 들린다

황석어젓 이고 새벽장 보로 가는

아낙네들의 북도 사투리가 들린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갈대밭이 보인다

암컷 수컷 어우러져 갈갬질하는

개개비가 보이고 물총새가 보인다

강가 깊드리에서 나래질하는

옛날의 내 동무들이 보인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래서

산동네 사람들은 꿈을 꾼다

버들고리에 체나 한 짐씩 덩그머니 지고

그 옛날의 무자리되어 길 떠나는 꿈을

가세가세 흥얼대며 길 떠나는 꿈을


<신경림, 바람 부는 날>

* 무자리: 화척

깊드리: 바닥이 깊은 논

나래질: 나래로 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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