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샤를리

원조시지프스 2015. 1. 31. 08:43

 

 

 

금년 초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틀 사이를 두고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와 유대인 식료품 가게를 겨냥한 테러행위가 일어났고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특히 유럽이 분노하여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하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영국의 미제 푸들 총리, 이스라엘 히틀러 총리 등이 양팔을 껴안고 파리 대로를 200미터가량 행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원죄가 있는 미쿡이 참여하지 않는 센스와 정보력이라니 ~ 펜을 칼로 제압하려는 폭거에 맨몸으로라도 펜을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이 참사를 객관적으로 복기해 볼 수 있는 제대로 돼먹은 언론매체가 옆에 있었다. 그 매체에게도 다행히 그 참사가 지구편 저쪽의 문제라서 그렇게 균형잡힌 기사가 실렸는지는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곳도 옛날에 꼴보수 가스통할배 아니면 군바리 색깔의 어떤 단체의 습격을 받았던 경력이 있었다.

 

샤를리 사태로 조성되고 있는 반테러주의와 관련하여 가장 인상 깊은 반론은 홍세화 선생의 발언이다. 『샤를리 에브도가 ‘펜’이었다면 ‘어떤’ 펜인가』? 따져보라는 것. 그는 또 이스라엘 출신 영국 지식인 길라드 아츠몬을 인용하여 『(샤를리는) 파리에 파견된 이스라엘의 문화담당관처럼 행동해왔다』고 지적했다. 선생은 샤를리가 본연의 자세에서 '일탈'했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의 정신이 떠나간 자리에서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 물결에서 텅 빈 좌파의 공간을 본다는 소회를 밝혔다.

 

같은 신문에서 소설가 장정일은 <독서일기>에서 샤를리 사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새물결,2013)를 요약하여 지구촌 갑 세력의 내재된 포악성을 지적한다. “문명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은 폭력의 재배치, 폭력의 접근권의 재배분이었다. 우리가 혐오하도록 훈련받은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은 존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장정일은 『인류 역사에서 폭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 현상』이라고 일갈한다. 또 르네 바르자벨의 <야수의 허기>(문학동네, 2004)를 인용하여 『“독사는 아무리 독이 없고자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리고 독사가 된 것이 그의 잘못도 아니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비문(非文) 아닌가 싶어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이 풀리고 나니 인용문 전체가 섬찟한 비문(秘文)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남찬, 축제

 

세월호 사태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새누리당 몫으로 참여한 조대환이란 의원의 행태가 보여주듯 법에 의한 공정한 규명도 물 건너 갔다. 매국친일세력의 폭력성은 그들 자신이 아무리 없고자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는 법. 광화문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버렸고 대한민국 역사시계의 배터리는 광복절, 1945년 8월 15일에 방전되었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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